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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구청사 이전 잔혹사… 33년 노후 건물이 던진 '행정 혈세'와 '표심'의 딜레마

안전진단 B등급 뒤에 숨은 '셋방살이' 행정의 민낯, 도안·죽동 이전설에 어은·궁동 상인들 "생존권 사수" 배수진

출처:MBC

가디언뉴스 김재한 기자 | 33년 전 대전엑스포의 함성과 함께 문을 연 유성구청이 이제는 ‘청년기 건물’에서 ‘정책의 시험대’로 떠올랐다. 행정 수요 폭증 속에서도 구조적 안전성을 이유로 존치되어 온 청사가,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눈으로 보기엔 멀쩡한 ‘B등급 청사’지만, 그 안에서는 공무원과 민원인이 동시에 공간 부족을 호소하는 기형적 행정이 이어지고 있다.

 

유성구는 현재 37만 인구를 관리하는 도시형 자치구로 성장했지만, 청사는 인구 12만 명 시절의 규모에 머물러 있다. 부서 상당수가 본청을 빠져나가 인근 건물을 임대해 근무 중이며, 일부 민원 부서는 아예 도보 10분 거리의 사무실로 분산돼 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건물은 버티는데 사람이 못 버틴다”는 자조가 나온다. 그 결과 민원인은 길을 헤매고, 구청 주변의 어은동·궁동 도로는 출근 시간마다 주차전쟁을 치른다.

 

이 같은 불편이 쌓이자 정치권은 ‘이전’을 해법으로 꺼내 들었다. 예비후보들은 하나같이 ‘새 청사’ 건립을 선거 공약 1순위로 내세운다. 후보군의 시선은 도안지구, 죽동, 유성복합터미널 배후 등 세 곳으로 갈린다.

 

도안지구는 대전의 신흥 중심지로 꼽힌다. 행정 타운 조성이 용이하고 교통 접근성도 뛰어나지만, 부지 매입비가 수천억 원대에 이를 것이란 점이 문제다. 반면 죽동과 신성동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대덕특구 연구원 접근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지만, 일부는 그린벨트 해제 절차라는 제약이 있다. 유성복합터미널 인근은 세종시와의 연계 효과가 크지만, 주변 교통 혼잡과 주민 반대 가능성이 변수로 꼽힌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30년 된 건물에 임시방편을 더하는 건 미래 행정 낭비”라며 “100년 행정을 내다본 신도심 청사로의 이전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청사 이전 후 현 부지를 주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개발 구상도 내세운다. 이들은 ‘청사 이전+복합문화공간 조성’이라는 2단계 플랜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어은동·궁동 상권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한다. 이 지역 상인들에게 구청은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심장’이다. 하루 수백 명의 공무원이 배출하는 소비가 곧 생계로 직결된다. 상인들은 “구청이 떠나면 가게도, 사람도 함께 사라진다”며 “카이스트 상권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미 경기침체와 고물가로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청사 이전은 ‘지역 공동화의 뇌관’으로 인식된다.

 

이들은 현실적 대안으로 ‘현 청사 리모델링+지하주차장 확대’를 요구한다. 또한 인근에 추진 중인 ‘유성복합문화예술센터’를 본청 기능과 통합해 행정과 문화가 공존하는 복합거점으로 꾸리자고 제안한다. 구청이 상권을 떠나는 대신, 지역의 새 활력을 이끌어내자는 절충안이다.

 

정용래 현 구청장은 이 ‘내실형 개선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막대한 이전 예산보다 지역 공존이 우선”이라며, 2030년 개관을 목표로 하는 복합문화예술센터 프로젝트를 핵심으로 내세웠다. 장기적으로는 ‘행정+문화+주민 커뮤니티’가 결합된 복합청사 모델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 접근은 한계도 크다. 분산된 부서의 공간 비효율, 주차난, 민원 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유성구청 이전 논란은 단순한 건물 문제가 아니다. 행정 효율성과 지역 생존권, 미래 도시계획의 비전을 둘러싼 가치 충돌이다. ‘이전’이냐 ‘사수’냐의 선택은 곧 300억 원 규모의 예산 방향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전문가들은 선거 이후 즉각적인 이해득실 논쟁보다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중장기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계산 대신 객관적 데이터—공간 효율, 교통 접근성, 상권 영향도, 주민동의율—에 기반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성구가 성장의 다음 단계를 밟기 위해서는 ‘새로운 청사’보다 ‘새로운 합의’가 먼저라는 목소리가 높다.

 

엑스포의 상징이었던 유성구청은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어은동의 낡은 상가와 도안동의 빛나는 아파트 숲 사이에서, ‘행정의 가치’와 ‘지역의 생명력’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운 것인지 묻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