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대전MBC
가디언뉴스 김재한 기자 | 대전 유성구 전민동과 문지동 일대 다가구 주택을 무대로 200억 원대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임대사업자가 1심에서 징역 13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의 대다수가 대덕특구 내 젊은 연구원들과 사회초년생이라는 점에서 지역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상당하다. 법원은 피고인의 죄질을 극히 불량하다고 판단했으나, 정작 삶의 기반을 잃은 피해자들의 보증금 회수 방안은 여전히 막막한 실정이다.
대전지법 형사4단독(이제승 부장판사)은 지난 6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 임대업자 A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범행 수법은 전형적이면서도 대담했다. A씨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전민동과 문지동 일대 다가구 주택 36채를 매입한 뒤, 선순위 근저당권과 보증금 합계액이 건물 시세를 훌쩍 넘는 이른바 '깡통전세' 상태를 숨기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가로챈 보증금은 확인된 것만 223억 원, 피해자는 223명에 달한다. 특히 피해자 1인당 평균 1억 원 안팎의 보증금을 잃은 셈인데, 이는 사회초년생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편취한 돈으로 백화점에서 수억 원을 소비하는 등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다"며 엄벌 이유를 분명히 했다.
유성구 전민동과 문지동은 인근에 대덕연구단지와 다수의 기업 연구소가 밀집해 있어 젊은 고학력 1인 가구의 수요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임대업자 A씨와 공모한 공인중개사들은 이 점을 악용했다. 이들은 "집주인이 자산가라 안전하다", "문제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감언이설로 연구단지에 갓 입사한 청년들을 안심시켰다.
범행을 도운 공인중개사 2명 역시 이번 판결에서 각각 징역 3년 6개월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중개 대상물의 위험성을 알릴 의무를 저버린 채 수수료 욕심에 눈이 멀어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중형 선고라는 법적 심판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피해자 대책위원회 측은 "가해자가 감옥에 가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이 복구되지 않는다"며 절규하고 있다. 실제로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선순위 채권에 밀려 보증금을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세입자가 대다수다.
정부와 지자체가 내놓은 전세 사기 특별법이 존재하지만, 다가구 주택 비중이 높은 대전 지역 특성상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다세대 주택과 달리 다가구 주택은 개별 호실별로 등기가 되어 있지 않아 우선매수권 행사가 어렵고, 매입 임대 절차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대전 유성구 정치권은 일제히 이번 판결을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비후보들은 저마다 '전세 사기 제로 도시 유성', '피해자 전담 법률 지원단 구성'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사건이 불거진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철이 되어서야 앞다투어 대책을 쏟아내는 모습이 전형적인 '표심 잡기용'이라는 지적이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유성구는 대전에서 청년 비중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만큼, 전세 사기 문제는 단순한 형사 사건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붕괴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며 "지자체가 직접 경매 자금을 지원하거나 장기 저리 대출을 주선하는 등 파격적이고 실질적인 구제책이 조례로 명문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1심 판결 이후 A씨 측의 항소 여부가 주목된다. 하지만 피해 규모와 죄질을 고려할 때 감형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제 공은 지역 사회로 넘어왔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파산이나 신용불량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긴급 생활 안정 자금을 투입하고, 악성 임대인 및 공인중개사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전민동의 한 피해 청년은 "국가를 믿고, 공인중개사를 믿고 계약한 죄밖에 없다"며 "범죄자 처벌은 당연한 것이고,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사다리를 놓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유성구 전세 사기 사건은 법적 정의 구현만큼이나 사회적 안전망의 복구가 절실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